2018/08/08 01:33

86-에이티 식스- 읽어보았습니다. 손맛담긴 곰보빵


그간 격조했습니다. 복귀포스팅은 역시 소설책 리뷰로.
바쁜 삶의 와중에도 글을 쓰려는 노력은 계속되는 와중에 잡은 소설, 86-에이티식스-입니다.
2016년 전격소설대상 대상 수상작 출신인 이 소설은 가만히 보면 평범한 일본산 밀빠소설같아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뚜껑을 열어보면(...)



1. 선입견

먼저 이 소설을 읽기전에는 무수히 많은 선입견이 생겼었습니다.
일단 소개문에서 소년과 소녀가 전장에서 만난다-라는 것과 소년 소녀의 계급이 대위급, 그리고 영관 장교인점. 군사소설(!)을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어딘가에서 몰려오는 정체불명의 적과 싸운다는 점. 절망적인 분위기라는 점.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들이죠. 작가 아하토 아하토 선생은 세부적인 설정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썼으니 양해바란다'라고 후기에 남기기는 하셨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너무나도 낯익은 그러니까 양판소를 기준으로 했다면 '빼고 보는' 익숙한 것들이 많았기에 이 소설은 사실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열어보니 주인공이 무언가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고, 타고 있는 기체가 거미형. 그리고 주인공의 동료들이 쉽게 죽어나간다.

...여기까지 연 상태에서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죠. 넵. 아실분은 아실만한 코드기어스 망국의 아기토입니다.
심지어 86 에이티식스의 주인공 이름은 신에이 노우젠(신), 망국의 아키토의 주요 등장 인물인 휴가 아키토의 형의 이름도 신.(중간에 아키토의 이름이 신으로 착각) 이거 너무 많이 따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초반 묘사.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이 소설의 초반부장면을 읽는데 이틀이나 걸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 밀리터리 소설인줄 아셨나요!? 쟌넨! 

이 소설은 밀리터리 소설이 아닙니다.
로봇이 나오고 전장터가 나오고 주인공들이 군인입니다만 밀리터리 소설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155mm구경에 대한 찬양성이 다분한 묘사도 계속 나오지만, 밀리터리 소설이 아닙니다.
이 소설의 진정한 정체는 사실... 정치풍자라고 해야하나... 철학소설이라고 해야하나...
너무나도 작위적인 스토리를 뒤로하고 이 소설은 단순히 이 개념만으로도 읽어볼만한 작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상을 쓴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다음단에 기재하겠지만, 이 소설은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 묘사를 제외하고는 너무 허술한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연 이 부분에서만큼 제가 요 근래 읽은 이런 류의 소설 중에서는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레나가 좋았습니다.
특히 레나가 좋았습니다. 중요한 건 두번 말해야죠?



3. 스포일링

사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만,
이 소설의 주안점은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와 인간에 대한 애찬으로 담겨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박해하는 백계종들과, 박해당하는 유색종들.
그럼에도 그들간에 싹트는 어떤 알 수 없는 유대.

마침 오늘 과거 일제치하때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일본인들에 대해서 공부를 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기분이 좀 묘해졌습니다. 일제 치하, 식민지인 조선인들을 2등 국민으로 지정하고 강제징용, 강제징병을 해 전쟁에서 소모시키거나 마루타, 성노예로 이용했던 일본의 모습과 그 한편에서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선에 대해 갈등했던 사람들의 존재.

이 소설의 주인공 레나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교육과 함께, 자신을 구해준 유색종-에이티 식스-의 도움으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양심인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양심적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을 깨닫고 절망하게 되죠. 스스로 상대들을 인격체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스피어헤드의 전대원들에게 지적받기 전까지 그녀가 지휘했던 에이티식스들의 이름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절망적인 환경이니까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맞서 싸워야한다-라는 인식이 그녀의 머릿속에도 뿌리박혀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빠져 포기해버린 것이 작중 그녀의 친구인 아네트이기도 하구요.

이 소설은 무척이나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레나의 감정 변동에 대해서 그리고 레나의 극복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읽어볼만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10여년전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동생을 만나고,

그 보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내부의 선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16세 소녀는

엔딩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한명의 '지휘관'이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감을 알고 그들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니니까요. 소설에서의 백계종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유생종들을 차별해주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에 반해 주인공인 레나는 스스로 '깨어있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스스로의 위안을 얻고 있다는 것일 뿐임을 결국 깨닫고 맙니다.

그리고 왜 그러한 사회구조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이 소설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 그런데 2권이...?

사실 대상같은걸 안탔으면 이 소설은 에필로그 없이 끝났어도 명작이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니... 투고에는 분명 에필로그 없는 장면(신이 죽었다고 예상되는 오픈엔딩)이 끝이 아니었을까.

아니, 근데 이 소설 2권이 있어요?

1권의 주제의식이 너무 강렬했고, 이미 종결되어버렸기 때문에 2권부터는 평범한 밀리터리 소설이 될 것 같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마치 CD데뷔에 성공한 우즈키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시라비의 레나 일러스트를 보는 순간 저는 이건 2권이 X라는걸 알아도 읽어봐야한다고 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혈의 여왕님, 너무 이쁩니다.

선혈의 여왕님과 여왕의 가신단에 대한 소설이 나온다면 필히 가신단의 필두들은 이 선혈의 여왕님에게 짖밟힌 M들이 아닐까 싶네요(...)

"내 명령을 들어! 내가 명령하기 전엔 죽지마란 말이야, 이 돼지자식아!"

아무튼 에이티식스, 오랜만에 읽어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덧글

  • 자유로운 2018/08/08 10:25 # 답글

    마지막 대사가 강렬하네요.
  • 카레 2018/08/08 17:06 #

    본편에 나오는 대사는 아닙니다만(...) 막판에 주인공이 다른 86들을 데리고 한 모습이 딱 그런 느낌이라... 본편의 주인공은 순딩이인데...
  • 레드진생 2018/08/08 10:58 # 답글

    오랜만에 특색있는 단권완결 라노베였습니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 저는 이 이상 깔끔할 수 없다고 생각되네요. 주인공 간의 감정관계도 괜스리 가볍거나 질척하지 않게 깔끔했고요. 제가 특히 대단하게 본 건, 1세대 징집자, 2세대 징집자, 그리고 주인공들인 3세대 징집자들의 변화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스포일러라 쓰지는 않겠습니다만...

    2권? 그거 본편 아니고 스핀오프잖아요? ㅎㅎㅎㅎ
  • 카레 2018/08/08 17:07 #

    요즘 통일문제나 일제치하식민시절 문제등을 바라보는 우리랑 비슷한 느낌이긴하죠... 아무튼간에 2권은 저도 역시 스핀오프가 아닐까(...)합니다.
  • 炎帝 2018/08/08 12:45 # 답글

    위키 확인해보니 4권까지 나온거 같네요. 어떻게 늘린건지...;;
    https://namu.wiki/w/86-%EC%97%90%EC%9D%B4%ED%8B%B0%EC%8B%9D%EC%8A%A4-
  • 카레 2018/08/08 17:08 #

    그래서 좀 느긋하게 끄나했는데 너무 깔끔하게 완결나버려서(...) 흠좀무스럽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